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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르투갈

해외에서는 아프지 말자..

해외에서 아픈 것보다 더 우울하고 서러운 건 없다고 생각한다. 응급실에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잔병 치레가 많은 나는 정말 건강이 최고라고 생각한다. 한국에서도 아프면 외롭고 서러운데 외국에서 아프면 답이 없기 때문^^ 어딜 가도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돈은 돈대로 나가고 몸은 개고생을 하기 때문이다. 사실 교환학생 생활을 외국에서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학교를 못 나갈 정도로 세게 아픈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서러운지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한국보다 외국에 있을 때 더 건강을 챙기는 편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하다.. 예를 들어 더 많이 운동한다던가.. 비타민을 더 잘 챙겨 먹는다던가.. 하지만 뭐 병이라는 게 경고하고 슬금슬금 다가오는게 아닌 것처럼 뜻하지 않게 외국에서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.

 

어느 날,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가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한 이틀을 배를 잡고 누워있었다. 본인은 장이 꼬인 적이 있어 맹장 수술을 이미 한 사람이라 (몸에 있어야 하는 건 잘 있고 필요 없는 건 다 없는 몸. 맹장도 없고 편도도 없고..) 어쩔 때 이건 그냥 배탈이고 이건 좀 쎈데? 라는 것을 구분하는데 이건 쎈데를 넘어서 그냥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수반된 상태였다. 급하게 병원으로 가는데 당일에 주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. 한 공립 병원으로 향했고 나는 보라색의 팔찌를 받게 된다.

 

보라색의 팔찌를 받고 응급실에 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있었다. 하염없이 기다리다 2시간이 지나고.. '응급실인데 왜 나를 안 보내주지?' 라는 생각에 다시 접수처에 가서 '나 너무 아파' 하자 초록색 팔찌로 바꿔주더라. 그래서 나는 이게 그냥 대기 번호 같은 팔찌인 줄 알았고 퍼스널 컬러 진단받으러 온 사람처럼 다른 색깔의 팔찌를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. 그러다 눈에 들어온 대기자들의 팔찌. 색이 형형 색색이었다. 거의 대부분 나처럼 보라, 초록이었고 그중에는 노란색도 있었고 드물게 주황색도 있었다. 

외국 응급실 protocolo de manchester
출처. 나

포르투갈에서 응급실을 가 본.. 아니 병원을 가본 게 처음이라 여기 시스템을 몰랐던 나.. 반성합니다. 나처럼 바보같이 3-4시간을 기다릴 사람들이 있을까 봐 글을 남기고자 한다. 혹시 포르투갈에서 응급실에 갈 상황이 생긴다면 바로 사립 병원으로 가시길 바랍니다. 

맨체스터 프로토콜
출처. Redec

이곳에서는 Protocolo de Manchester 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이 있다. 영어로는 Manchester Triage System 이라고 불리는 이 체계는 긴급 치료가 필료한 환경에서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여 우선순위를 매겨 진료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. 환자들이 긴급한 상황에서 적합하고 시기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. 본 시스템은 환자를 색상에 따라서 분류하는데.

 

빨간색: 매우 응급 상황

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. 신체의 25% 이상이 화상을 입거나 호흡 문제, 발작, 심정지 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.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는 환자들이 빨간 팔찌를 받게 되는 것. 실제로 이 상황을 직접 목격했는데 내 눈앞으로 자동차 사고가 난 사람들이 실려갔고 사실 팔찌를 채울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. 정말 급박한 상황, 급박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당연히 최우선 순위.

 

주황색: 응급 상황

사망할 수 있는 위험이 큰 환자들. 예를 들어 심장의 부정맥이 의심되는 환자, 정말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 등을 가진 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. 최대 대기 시간은 10 분 내외이다. 

 

노란색: 보통 응급

의학적인 치료는 필요하지만 즉각적인 치료는 필요하지 않을 때 노란색 팔찌를 받게 된다. 환자가 실신했을 때, 중간 정도의 통증을 가졌을 때, 심각하지는 않은 출혈이 일어났을 때, 공황 발작과 구토를 하는 경우 이에 해당한다. 최대 대기 시간은 50 분 내외이다.

 

초록색: 비교적 응급 상황이 아님

경미한 통증, 편두통,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발열, 메스꺼움 및 현기증, 억제가 가능한 출혈 등을 가진 환자가 이에 해당한다. 위와 비교하면 응급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약 2시간의 대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.

 

파랑 및 보라색: 응급 상황 아님

대기 시간이 최대 4시간에 해당하는 파랑 및 보라색 팔찌. 급성 통증으로 찾은 환자, 그저 약물 처방이 필요한 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. 

 

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방법으로 치료를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 정말 효과적이라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잘 모르겠다. 뭐 의사 선생님이 훨씬 더 잘 아시겠지만.. 대기 벤치에서 3시간을 있으면서 응급실을 찾은 많은 사람들을 봤는데 거의 눈이 뒤집어진 분도 계셨지만 저랑 같은 색의 팔찌잖아요.. 제가 더 밝은 색을 가졌다면 정말 바꿔드렸을 텐데.. 

 

해외에서 살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한국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것.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갈 수 있고 바로 진료가 된다는 점이 정말 큰 장점이다. 여기서는 응급이 아니고서는 병원을 예약해야 하는데 2주 뒤에 예약하고 가면 깔끔하게 다 나아있는 매직. 정말 도움이 1도 되지 않는다 :) 그냥 한풀이하며 말하고자 하는 건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거~ 깔끔하게 마무리.